Blazer's Edge

1라운드 소감

chalupa 2019. 4. 29. 01:18


너키치가 빠진 이상 재능의 총합은 오클이 더 많았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오클 in 6를 예상하거나 (명목상) 업셋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리즈로 꼽을 만도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진 재능을 잘 활용하는 부분 - 즉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 자신의 약점은 가리는 움직임 - 에서 포틀이 훨씬 더 나았다. 승부처가 될수록 그런 면이 더욱 두드러지지 않았나 싶다.  


그게 단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센터 포지션. 캔터는 애덤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애덤스의 발이 무딘 점을 활용해서 릴라드가 외곽에서 폭격을 해버렸고, 결국 도노반 감독은 기동력이 좋은 그랜트를 센터로 올리는 스몰라인업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스몰라인업으로의 조정은 꽤 효과적이었으나 조정이 이루어진 시점은 4차전 후반. 포틀에게 무게추가 확 기울고 난 다음이었다. 그마저도 애덤스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에 제한적으로 쓰였고. 


애덤스가 털리는 만큼 캔터도 털렸다면 오클로서는 괜찮았을 것이다. 오클의 캔터 공략법은 1) 픽앤롤에서 돌파나 앨리웁, 2) 애덤스의 1대1 포스트업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포틀 수비의 기본 교리가 드랍백이다보니 대놓고 들어오는 돌파에는 면역력이 있는 편이다. 심지어 나중에는 캔터가 러스를 떡블락(!)하는 장면까지 나오기도 했고. 롭패스가 위협적이긴 하나 메인 옵션으로 쓰기는 무리가 있고, 실제로 좀 뻔한 시도들은 헬프 디펜더들에게 여지없이 걸렸다. 애덤스의 포스트업 또한 효과적이었지만 템포가 끊기기 때문에 주공으로 쓰기는 부담스러운 옵션이다. 게다가 이쪽도 포틀의 헬핑이 들어와서 공을 긁어낼 위험이 있었고. 


사실 가장 효과적인 공략법은 캔터를 외곽으로 끌어내서 조지는 거지만, 메인 볼핸들러가 서브룩인 이상 캔터는 아무 걱정 없이 뒤로 빠져서 골밑만 지키면 되었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 것도 캔터가 분전하는데 한몫 했으리라. 


물론 캔터가 너키치만큼 골밑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많은 팬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코트에 세워두지 못할 정도로(can play Kanter!) 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상 투혼까지 불사하는 투지와 열정을 보여줘서 팬들을 감격시켰다. 오펜스에서 기대했던 골밑 득점과 공리를 착실히 챙겨준 건 덤.

 


그래도 폴 조지의 어깨가 정상이었다면 얘기가 좀 달랐을 수도, 적어도 포틀이 이렇게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정규시즌에 오클에게 스윕을 당한 이유는 조지에게 전방위적으로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외곽에서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전반기에 mvp급이던 조지의 폼이 올스타전 이후 어깨 부상을 기점으로 하락했고, 플옵 와서도 그 흐름은 이어졌다. 여전히 위협적인 스코어러이긴 했어도 3점이 터지지 않는 이상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클리스의 피지컬한 수비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1차전 하클리스의 거듭된 블락은 분위기를 잡는데(set the tone) 큰 역할을 했다. 



*

릴라드와 서브룩의 신경전은 예전부터 있었다. 솔직히 신경전이라기보다는 그냥 서브룩의 일방적인 도발과 디스였지만... 그래도 릴라드는 나름 서브룩을 리스펙하는데, 서브룩은 뭐랄까... 데임을 리스펙할 만한 상대로 생각을 안 한다는 느낌? 릴라드가 데뷔하고부터 줄곧 이런 양상이었다. 플옵에서 처음으로 만나면서 한층 더 치열해진 신경전은 3차전에서 정점을 찍었다. 계속되는 서브룩의 rock the baby 세레모니에 더해서 슈루더가 데임의 시그니쳐 세레모니인 손목 치기를 따라하면서 데임을 조롱했고, 마지막에는 조지가 불문율을 깨고 슬램덩크를 먹였다. 


당연히 그 덩크로 파이어가 났고, 제3자들은 팝콘을 튀겼다. 뭐 불문율은 불문율일 뿐이니 어겼다고 해도 기분은 좀 나쁠지언정 조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포틀이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정당방위라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상당수가 동조하는 광경은... 진짜 내가 그동안 nba를 헛봤나 싶었음. 지금껏 수많은 가비지 마무리를 봐왔지만 진 팀은 끝까지 정상적으로 공격하고, 이긴 팀은 어차피 이겼으니까 설렁설렁 수비한 다음에 마지막 포제션 잡으면 굳이 슛 안 쏘고 드리블 치면서 시간 죽이다 끝내는 경우가 99%였다. 그러니까 불문율이 된 거고. 간혹 가다가 진 팀에서 공격을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스스로 선택한 거고, 끝까지 공격 한다고 해서 이긴 팀에서 도발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적어도 내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걸 윈드밀로 응징-_-하는 경우는 더더욱... 4차전에서 포틀이 불문율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확하게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도발 당한 것도 짜증나는데 그 책임을 오히려 뒤집어 쓰는 부조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 그냥 한숨만...


가장 화제가 된 건 당연히 조지의 슬램덩크였지만, 개인적으로나 정말 기분 나빴던 도발은 슈루더의 세레모니 흉내였다. 기싸움 차원을 넘어 이건 그냥 대놓고 조롱이어서... 시리즈 끝나고 인터뷰에서 콕 찝어서 언급한 거 보면 데임도 당시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어지간히 부아가 났던 모양이다. 뭐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만큼 오클이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는 방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여유가 없을수록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러한 강도 높은 도발에 대한 포틀과 데임의 대처는 볼만했다. 상대의 도발에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냉정하게 플레이한 결과 4차전에서는 완승을 거뒀고 가비지 타임이 또 나왔다. 3차전과 정반대의 상황이 만들어지자 포틀의 마지막 포제션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참고로 그 직전 포제션에서 오클의 네이더는 가비지임에도 그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림.어.택.을 해서 레이업까지 넣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흠.. 뒷짐을 지지 않은 잭이 잘못한 거겠지?ㅎ 아무튼.. 똑같이 갚아줄 것인가, 평상시처럼 불문율을 지킬 것인가. 선택권은 포틀에게 넘어왔는데... 포틀은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데임도 사람인만큼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기가 경기를 마무리했다면 버저와 함께 딥3를 날릴 지도 몰랐다고... 하지만 스토츠 감독이 적절하게(?) 그전에 데임을 벤치로 불러들였고, 데임은 코트에 나온 사이먼스에게 슛을 쏘라고 하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꿨다. 굳이 맞대응해서 저쪽이 원하는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이먼스에게 그냥 공을 잡고 있으라고 얘기했고, 결국 매우 '정상적으로' 4차전은 마무리되었다. 팝콘을 튀겨놓은 관객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도발에 대처하는 포틀의 자세가 4차전을 가져왔고 나아가 시리즈를 확실하게 굳혔다고 본다. 도발에 꿈쩍하지 않는 포틀에게 질린 건지 아니면 도발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후 5차전에서 오클은 도발보다는 경기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임과 그의 팀은 이제 성숙했고 더욱 강인해졌다.   


노력했구나 성장했구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작년에 치욕적인 스윕을 당한 이래, 포틀에 대한 평가는 결국 플옵에서의 성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포틀은 1년 만에 치욕을 씻고 스스로를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있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졌다. 데임과는 끝까지 같이 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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